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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EOLOGY

중세유럽의 독특한 왕자 교육법, 왕자 대신 체벌을 받는 '매맞는 소년'

by 아이디어박람회 2024.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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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의 어느 시대를 보아도 사람들의 왕족에 대한 숭배는 대단한 것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왕족은 '신의 환생'으로 여겨지거나, '평민이 함부로 닿을 수 없는 존재'로 특별시되어 왔다. 그 가운데 생겨난 기이한 풍습 중 하나가 지금 소개할 '매맞는 소년'이다. 이는 중세유럽과 근세유럽 왕실에서 널리 퍼졌던 관습으로, 현대에서 같은 일을 하면 단번에 큰 비난을 받을 일이겠지만, 이 관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중세유럽의 독특한 왕자 교육법, 왕자 대신 체벌을 받는 '매맞는 소년'

 

손댈 수 없는 왕자를 대신하여 체벌을 받는 대리인

 

중세유럽과 근세유럽에서 왕족은 '접촉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고, 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왕이나 그 후계자인 왕자에게 손을 대는 것은 중대한 죄로 간주되었으며, 때로는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했다. 측근이 왕에게 손을 대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어린 왕자에게는 교육적 지도가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쁜 행동을 해도 꾸짖지 않고, 오직 달래기만 해서는 장차 한 나라를 책임질 훌륭한 왕으로 성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손댈 수 없는 왕자를 어떻게 꾸짖었을까?

 

왕자의 대리인, 매맞이 소년의 등장

 

가정교사가 왕자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후계자인 왕자에게는 전속 가정교사가 배정되어 왕으로서 필요한 학문을 폭넓게 가르쳤다. 왕자라 하더라도 아이이기 때문에 장난을 치고, 잘못을 저지르거나 규칙을 어기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교사가 왕자보다 지위가 낮기 때문에 왕자를 꾸짖고 싶어도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바로 '매맞는 소년'이다. 매맞는 소년은 일종의 '체벌 대리인'으로, 왕자 옆에서 함께 고등 교육을 받으며, 왕자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대신 매를 맞는 역할을 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비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손댈 수 없는 왕자를 반성하게 하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왕자에게 매맞는 소년은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친구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매를 맞게 되니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풍습을 고안한 사람은 우정을 통해 왕자가 스스로 반성할 수 있도록 하려 했던 것이다. 그 효과는 과연 어땠을까?

 

매맞이 소년이 되는 것은 '출세의 첫걸음'이었다?

 

어린 에드워드 6세와 채찍질하는 소년을 그린 그림

 

 

매맞는 소년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지만, 몇 가지 실례가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왕 에드워드 6세(1537–1553)의 어린 시절에는 바너비 피츠패트릭(Barnaby FitzPatrick)이라는 소년이 체벌의 대리인으로 붙어 있었다. 1592년의 기록에 따르면, 바너비 소년은 어린 에드워드 6세가 욕설이나 신성 모독적인 말을 했을 때 대신 매를 맞았다고 한다. 이 역할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매맞는 소년으로 선택되는 것은 왕궁에서 출세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여겨졌다.

 

1852년에 저명한 작가였던 하틀리 콜리지(Hartley Coleridge)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대리로 매를 맞는 것은 고귀한 혈통을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하급 귀족들은 자기 자녀가 그 대리인으로 선택되는 것을 명예로운 첫걸음으로 간절히 바랐다."

 

매맞는 소년은 왕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중요한 정보를 얻어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제로 바너비 소년도 왕궁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성인이 된 후 남작이 되어 고명한 귀족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왕자의 반성 효과는 글쎄...

 

어린 시절의 루이 15세

 

 

한편, 매맞이 소년의 존재가 왕자에게 반성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어린 시절의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1710–1774)다. 그의 가정교사는 왕자의 놀이 친구가 될 소년들을 여럿 데려왔고, 앞서의 경우처럼 왕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들을 대신 체벌했다.

 

하지만 루이 15세는 소년들이 아무리 맞아도 학업을 게을리하고 불량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매맞이 소년을 보며 마음 아파하는지는 왕자의 성품에 달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기묘한 풍습은 기대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했거나, 도덕적 이유로 시대와 함께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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