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서부 해안에 자리한 고아 주의 수도 파나지의 길거리 위에 생기는 그림자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단순히 햇빛이 건물 틈새로 들어와 생긴 그림자인가 싶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그 그림자들이 알파벳 하나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따. 이 풍경은 인도 델리 출신 그래피티 아티스트 다쿠(Daku)의 작품으로, 그는 “시간의 이론(The Theory of Time)”이라 불리는 스트리트 아트 인스톨레이션을 이곳에 설치했다.
골목 위쪽에 알파벳 활자들을 매달아 두고, 햇빛이 내려앉는 각도에 따라 거리에 그림자를 투영하도록 했다. 오전의 부드러운 빛, 정오의 뜨거운 태양, 오후의 기울어지는 햇살까지 모두가 이 예술에 참여하는 셈이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시간은 신비롭다. 시간은 이동한다. 시간은 우리 위를 날며 그림자를 남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간은 환상이 된다.” 이 알파벳 문장들이 길 바닥에 그림자로 찍힐 때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비로소 시각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건물에 걸쳐진 철제 활자들이 해가 옮겨 갈 때마다 길이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고, 어느 시점에는 완전히 다른 단어로 보이기도 한다. 이쯤 되면 “그래, 이게 바로 시간이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시간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막상 정의하기가 까다로운 존재다. 해가 뜨고 지는 건 매일 반복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은 단 한순간도 똑같지 않다. 그걸 분명히 보여주듯, 다쿠의 설치물은 매 순간 달라지는 햇빛 각도에 따라 그 모습도 계속 바뀐다. 오전 10시에 보았던 그림자와 오후 3시에 보았던 그림자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인도의 비영리 단체 St+art India와 협력하여 완성됐다. St+art India는 도심 속 공공 장소에 예술을 도입해, 사람들이 일상에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돕는 단체다. 갤러리나 박물관을 찾아가지 않아도,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누구나 예술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쿠와 같은 거리 예술가가 마음껏 작품을 펼칠 수 있었고, 그 결과물로 “시간의 이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얼핏 보면 이 작품은 단순히 거리 위에 떠 있는 철제 글자와 그림자 놀음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눈길을 주고 지켜보다 보면, 시간에 관한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정말 시간이란 게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가 맞구나.” “지금 이 순간도 곧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식의 감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작품 앞에 서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현재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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