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며 “진짜 사자랑 싸웠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면, 그 답을 들려줄 뼈 한 조각이 영국 요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메이누스대 연구팀은 드리필드 테라스 묘지의 사자와 싸운 검투사 남성 유골 ‘6DT19’(연구자들이 붙인 명칭) 골반에서 사자 송곳니 자국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고 2025년 4월 23일자 과학 저널 "PLOS ONE"에 게재되었다.
기록에만 있던 ‘검투사와 사자의 혈투’가 처음으로 물증을 얻은 것이다.
요크까지 사자를 끌고 온 이유
3세기 무렵 요크는 북방 전선을 지키는 로마군 사령부였다. 로마 제국의 193년부터 211년까지 재위했던 황제 세베루스가 숨을 거둔 도시이기도 하다. 권력자와 장군들이 모인 곳엔 당연히 ‘본토 못지않은 오락’이 필요했다. 코끼리를 불러들이던 로마의 물류망이라면, 지중해를 건넌 사자 한 마리쯤은 충분히 조달 가능했다. ‘피비린내 나는 쇼’를 통해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새로 온 총독의 위세도 과시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자와 싸운 검투사 6DT19가 겪은 마지막 경기
CT 스캔 결과, 6DT19는 26~35세의 건장한 남성이었다. 척추에 과사용 흔적, 폐·대퇴부 염증, 어린 시절 영양결핍까지… 싸움으로 흠집 난 몸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회복력이 좋았다. 그가 쓰러진 결정타는 골반을 꿰뚫은 사자의 이빨.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사망한 점을 보면, 경기 도중 혹은 막 끝난 직후 숨이 끊겼을 가능성이 크다. 영화처럼 검을 꽂아 ‘동귀어진’을 노렸을 수도, 사자에게 끌려가다 절명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유골은 검투사와 사자의 실제 싸움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계 최초의 물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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