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사라진 고대 도시 폼페이. 그러나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유적은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최근, 폼페이 유적의 레지오 IX(Regio IX) 지역에서 호화로운 대저택과 대규모의 개인 욕장, 그리고 연회장이 함께 발견되었다.
폼페이의 상류층들이 단순히 부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고대 로마의 귀족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접대했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보여주었는지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호화로운 욕장
이번에 발굴된 저택의 개인 욕장은 고대 로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실 구조로 되어 있다. 칼다리움(Caldarium, 고온 욕실), 테피다리움(Tepidarium, 미온 욕실), 프리지다리움(Frigidarium, 냉욕실)이 갖춰져 있으며, 아포디테리움(Apodyterium, 탈의실)도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프리지다리움(냉욕실)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넓은 중정(아트리움)에 조성된 10m² 규모의 대형 냉수 욕조로, 욕조 주변이 기둥 회랑(페리스틸룸)으로 둘러싸여 있어 더욱 웅장한 느낌을 준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개인 욕장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시설이다.
고대 로마의 욕장은 사회적 교류의 장이었으며, 지적인 담론과 정치적 논의가 오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곳에서 벌어졌던 대화와 만남은 단순한 사교 이상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연회장과 욕장의 연결, 고대 로마의 사교 문화
이번 발굴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욕장과 연회장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로네 네로(Salone Nero, 검은 광장)’라고 불리는 이 연회장은 검은색 벽 위에 신화 속 장면이 그려진 화려한 공간이다. 폼페이 유적공원의 디렉터 가브리엘 추크트리겔(Gabriel Zuchtriegel)은 “욕장과 연회장은 집주인이 자신의 문화적·정치적 지위를 드러내고 방문객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중요한 무대였다.” 라고 설명했다.
벽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의 헬레네’와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첫 만남을 그린 벽화가 남아 있다. 이는 고대 로마 상류층이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고, 이를 자신들의 지적·사회적 자산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연회가 끝나면 손님들은 욕장에서 몸을 식히며 담소를 나누었을 것이다.
화려한 연회와 목욕이 결합된 이 공간은, 폼페이 귀족들의 사교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점은, 검은 연회장이 중정(아트리움)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저택의 2층으로 이어지는 긴 계단이 존재한다는 것. 그 계단의 아치에는 검투사들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목탄화와 풍요와 행운을 상징하는 고대 로마식 팔루스(남성 성기 모티프) 장식이 남아 있다.
화산 폭발의 희생자들, 그리고 발견된 노예들의 흔적
이번 발굴에서는 욕장과 연회장뿐만 아니라, 폼페이의 비극적인 순간을 보여주는 유물들도 다수 출토되었다. ‘푸른 방(Aula Azzurra, 블루 룸)’이라 불리는 작은 방에서는 농업과 자연을 상징하는 여성상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었다. 이 공간이 종교 의식이나 신성한 물건을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발견은,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희생된 두 명의 유해였다. 이들은 두려움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들의 흔적은 폼페이 최후의 날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역사적 단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23년 이후 진행된 레지오 IX 지역 발굴에서 좁은 빵 공방과, 강제 노동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노예들의 흔적도 발견되었다.
폼페이는 단순히 화려한 귀족 문화만 존재했던 곳이 아니었다. 그들의 부와 사치는 노예들의 노동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것임을 보여준다. 폼페이의 유적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번 발굴은, 화려한 문명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까지도 함께 밝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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