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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SCIENCE

지진 예측할 수 없는 이유

by 아이디어박람회 202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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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이탈리아 법원은 이탈리아 국가 중대위험 예측 및 예방위원회 소속 과학자 6명과 정부 관리 1명이 '과실치사죄'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들이 저지른 죄는, 2009년 4월 6일에 발생한 이탈리아 라퀼라(L'Aquila) 지진을 미리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진 예측할 수 없는 이유

 

 

정확히는 지진의 위험성을 시민들에게 충분히 경고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이유였다. 당시 이 지진으로 무려 308명이 목숨을 잃고, 1천여 명이 다쳤으며 수만 채의 건물이 폐허가 되었다.

 

'과학이란 도대체 어디까지 예측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던진 사건이었다.

 

현재 과학의 수준으로는 지진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미리 예측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진이란 어떻게 생기는 걸까?

 

지구 표면이 거대한 암석판(판)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판들은 서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부딪히고 스쳐 지나가는데, 이때 맞닿은 부분이 '단층'이다.

 

단층은 매끄러운 평면이 아니라 아주 울퉁불퉁하고 거칠어서 잘 움직이지 않고 서로 꽉 맞물려 있다. 하지만 판들이 꾸준히 움직이면서 그 사이에는 엄청난 힘이 축적된다. 시간이 지나 힘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면 맞물려 있던 단층이 갑자기 크게 미끄러지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한꺼번에 방출한다.

 

이 에너지가 땅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지진파가 되고, 우리가 느끼는 지진이 발생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지진의 중심, '진앙(epicenter)'을 찾아내는 방법도 나름 정교하다. 지진파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가장 빠르게 도착하는 P파와 조금 느리게 따라오는 S파가 그것이다.

 

지진 발생 지점에서 가까울수록 이 두 파동이 거의 동시에 도착한다. 서로 다른 위치에 설치된 세 대의 지진계에서 이 두 파동의 도착 시간 차이를 측정하면 삼각측량을 통해 정확한 진앙 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

 

문제는 지진의 위치가 아니라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왜 지진 예측할 수 없을까?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지진 전문가인 마이클 블랜피드(Michael Blanpied)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진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실험실에서 작은 규모의 지진을 만들어볼 수도 있고, 광산 같은 곳에서 소규모 지진을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큰 지진이 발생하는 땅속 깊은 곳의 환경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암석의 상태나 온도, 압력 같은 조건이 너무나 다양하고, 지진이 시작되는 정확한 지점 역시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죠."

 

더구나 지진의 초기 모습은 크든 작든 똑같을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아주 작은 흔들림으로 시작한 지진이 갑자기 규모가 커지는 경우도 있고, 그대로 작게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진을 미리 예측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미션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매일 지구에서는 수천 건의 작은 지진들이 발생하는데, 이 모든 지진이 똑같이 시작되니 어떤 것이 대형 지진으로 발전할지 미리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과학자들이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정확한 시점과 규모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특정 지역이나 특정 단층에서 지진이 일어날 확률을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지진 확률 예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 단층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과거에 얼마나 큰 지진이 발생했는지, 이 지진들이 얼마나 자주 반복되었는지를 통해 앞으로 발생할 지진의 가능성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헤이워드 단층은 140~150년 주기로 큰 지진이 발생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큰 지진이 발생한 게 1868년이니, 이제 다시 지진이 올 때가 되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다만, '올 때가 되었다'는 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일일 수도 있고, 20년 후일 수도 있다. 한때 미국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큰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1980년대, 미국 지질조사국은 캘리포니아 산안드레아스 단층의 파크필드 지역에서 5년 안에 규모 6의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많은 장비를 설치하고 긴장하며 기다렸지만 결국 지진은 2001년에야 발생했다. 5년이라는 예측이 20년이나 늦어졌고, 지진 직전의 어떤 특별한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지진 예측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크게 꺾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ShakeAlert'라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지진이 실제로 발생하기 몇 초에서 최대 몇 분 전까지 미리 경보를 알려주어 사람들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시간을 벌어주는 시스템이다.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해도, 최소한의 대비 시간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인명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랜피드는 이렇게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연구했지만 지진을 정확히 예측하는 기술이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합니다. 지진을 피할 수 없다면, 건물을 튼튼하게 짓고 조기 경보 체계를 잘 갖추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입니다."

 

과학이란 절대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진 예측이 정확히 언제 가능한지 알 수 없어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질 수 있다면 과학의 가치는 충분히 증명될 것이다. 인간이 지진을 정복하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지진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은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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