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2일, 책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현상이 실제 우주에서 선명하게 촬영됐다. 태양 표면에서부터 나선형으로 휘감기며 솟아오른 이 태양풍의 길이는 자그마치 200만 킬로미터.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다섯 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길이다. 이 장엄한 광경을 최초로 생생히 담아낸 건 ESA(유럽우주국)와 NASA(미항공우주국)의 공동 태양 탐사선, 솔라 오비터(Solar Orbiter)다.
태양의 바깥쪽 대기층, 코로나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솟구치는 순간을 촬영한 솔라 오비터
코로나에서 솟아오른 가스는 마치 태양이 끈을 잡고 하늘 높이 돌리는 것처럼 나선을 그리며 우주 공간으로 뻗어 나갔다. 태양의 반지름의 세 배가 넘는 길이로 뻗어나간 이 나선형 가스 기둥은 3시간 넘게 지속됐다.
이 촬영이 가능했던 것은 솔라 오비터에 탑재된 '메티스(Metis)'라는 특수 장비 덕분이었다. 메티스는 태양의 눈부신 빛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어두운 코로나층의 미세한 가스 움직임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설계된 '코로나그래프'라는 장치다.
ESA는 메티스가 태양풍의 구조와 움직임을 이렇게 선명하게 실시간으로 담아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비라고 한다. 그렇다면 태양풍은 어떻게 이런 나선형을 만들어냈을까?
과학자들은 이를 '알벤파(Alfvén wave)'라는 물리현상에서 찾았다. 알벤파는 1942년 스웨덴의 물리학자 한네스 알벤이 처음 발견한 파동으로, 플라즈마 상태인 태양의 가스가 자기장과 함께 진동하면서 퍼져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마치 기타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을 때 울리는 진동과 비슷하다.
태양의 강력한 자기장이 이 플라즈마와 함께 진동하면서 정교하고 깔끔한 소용돌이 모양의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거대한 소용돌이가 발생하기 직전, 태양 표면 근처의 '극관 필라멘트'라는 부분에서 폭발적 현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극관 필라멘트는 태양의 북극과 남극 부근에서 자기장에 의해 떠 있는 거대한 가스 덩어리로, 안정된 자기장이 약해지거나 끊어지면 우주 공간으로 폭발적으로 가스가 방출되는 '코로나 질량 방출(CME)'이라는 현상을 일으킨다.
이번에 관측된 나선형 구조는 CME 직후에 자기장이 재결합하면서 밀도가 높은 가스와 함께 꼬인 자기장이 결합하여 방출된 결과로 나타났다.
폭발 이후 3시간 이상 지속된 희귀 태양풍 현상
일반적으로 태양에서 발생하는 이런 폭발 현상은 일시적이며 금방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 관측된 태양풍은 무려 3시간 동안이나 형태를 유지했다. 태양에서 일어난 폭발 현상이 이렇게 오랜 시간 형태를 유지하며 관측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래서 이제 연구팀은 더 작은 규모의 태양폭발에서도 비슷한 꼬인 구조가 형성되는지를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다. 또한 이렇게 생성된 소용돌이가 최종적으로는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가는지, 아니면 태양의 표면으로 다시 떨어지는지도 아직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ESA는 앞으로 더 정밀한 태양 관측을 위해 'PROBA-3' 등 새로운 탐사선의 발사도 준비 중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의 권위 있는 천문학 전문 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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