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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EOLOGY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굴된 미스터리한 납관, 16세기 시인 조아샹 뒤 벨레일까?

by 아이디어박람회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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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화재로 인해 복구 작업이 계속되고 있던 노트르담 대성당의 본당 아래에서, 2022년 초 미스터리한 관이 발굴되었다. 납은 습기를 막고 부패를 지연시키는 금속으로, 과거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관 재료로 사용되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에도 납이 사용되었다. 이 납관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기사’로 불린 이 유해는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 조아샹 뒤 벨레로 밝혀졌다고 한다.

 

유해의 특징에서 관 속 인물 추정

 

 

 

2022년 발굴 조사 중에 발견된 이 납관은 대주교 앙투안 드 라 포르트의 관 근처에 있는 석관에 봉인되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툴루즈 대학병원 법의학 연구소에 따르면, 납관의 주인에게는 결핵, 만성 수막염의 흔적이 있었고, ‘기사’라는 별명에 맞는, 자주 말을 타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골격의 특징이 있었다고 한다.

 

툴루즈 제3대학의 생물인류학 교수 에릭 쿠르베지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특징은 모두 조아샹 뒤 벨레와 일치합니다. 그는 말을 잘 타던 인물로, 자신의 시에서도 자신의 지병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결핵으로 인한 만성 수막염으로 인해 치아가 빠졌고, 마지막에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상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두개골과 흉부를 절개한 흔적이 보이며, 방부 처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귀족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의 가족 중에는 왕실이나 교황의 측근이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시인 조아샹 뒤 벨레의 생애와 매장

 

 

 

조아샹 뒤 벨레는 1522년 프랑스 서부 앙주에서 태어나, 이후 파리와 로마에서 살며 르네상스 시대에 독창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질과 표현력에 필적하는 것으로 평가되며, 말년에는 오랜 병에 시달리다가 1560년 37세에 사망했다.

 

사후 그는 친척인 성직자 장 뒤 벨레와 함께 노트르담 대성당에 묻힌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장의 유해는 예배당 지하에서 발견되었으나, 조아샹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9년 4월 15일 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생한 화재 이후, 성당의 본당과 익랑이 교차하는 지하에서 100개 이상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조아샹 뒤 벨레라고 확정할 수 없는 목소리도

 

하지만 이 납관의 주인이 확실히 조아샹 뒤 벨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프랑스 국립예방고고학연구소(INRAP)의 크리스토퍼 베스니에에 따르면, 동위원소 분석 결과 이 남성은 앙주가 아닌 파리나 리옹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동위원소는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이나 음료수를 통해 신체의 뼈나 치아에 흡수된다. 그 비율을 조사하면, 그 사람이 주로 어디서 식사와 물을 섭취했는지 알 수 있다. 조아샹은 앙주에서 태어났지만, 파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쿠르베지 박사는 반박한다.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있어 현대 과학이 더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조아샹의 칫솔을 찾아 DNA를 일치시키는 방법 외에도, 그의 사망 당시의 나이와 병리학적 특징만으로도 그가 맞다고 확신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노트르담 대성당은 복구 작업을 마치고 2024년 12월 8일부터 다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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