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클래스 운동선수라면 오래 살지 않을까?” 필자는 한때 “선수들은 맨날 운동하고, 식단도 철저히 관리하니까 당연히 수명이 길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운동선수라서 건강? 그 이면의 이야기
우리는 흔히 운동선수라 하면, 일상에서 철저한 식단과 규칙적인 훈련에 매달리는 ‘건강의 화신’ 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예를 들어,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며, 근력과 지구력을 키우는 모습 말이다. 하지만 막상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승리를 위해 ‘평범한 운동’ 이상의 강도 높은 훈련에 몸을 혹사하기도 한다.
게다가 언론과 대중이 보내는 압박, 메달이나 기록에 대한 기대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고된 훈련’과 ‘심리적 부담’이라는 양날의 검이, 결국엔 수명을 단축시키지는 않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실, 운동이 건강에 좋다는 명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이 글의 핵심이기도 히다.
9만 5000명 넘는 전직 톱운동선수의 수명 통계
이런 궁금증을 파헤치고자,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University of Groningen) 소속 연구진이 연구를 진행했다. 전 세계 183개국, 무려 44개 종목 출신의 전직 톱운동선수 9만 5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이들의 수명을 통계적으로 검증한 것이다.
연구진은 공개된 위키백과(Wikipedia), 위키데이터(Wikidata) 정보를 활용해 선수들의 생몰 정보, 성별, 국적, 종목 등을 모조리 수집했고, 이에 더해 세계은행 자료까지 끌어와 일반인의 평균 수명과 비교했다. 그리고 성별에 따라 수명이 달라지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이 연구 결과는 2024년 8월 12일 자 학술지 GeroScience에 발표되었다.
남성 운동선수는 어떤 종목이 장수와 관련이 있었나
연구 대상 중 95% 이상이 남성 전직 운동선수였기에, 먼저 남성 결과부터 확인하였는데, 통계적으로, 특히 봉대높이뛰기(장대높이뛰기)와 체조 출신 선수들이 약 8년가량 더 오래 산다는 상관관계가 확인되었다. 여기에 펜싱, 육상 혼합 종목(여러 육상 종목을 복합적으로 뛰었던 선수), 야구 선수들 또한 일반인 대비 더 길게 사는 추세가 나타났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 종목들에 공통적으로 유산소 운동과 무산소 운동이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다양하고 고른 신체 능력을 활용하는 경우, 지구력 향상·혈압 관리·체지방률 감소·근육량 증가·골밀도 상승 등 건강상 이점이 크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톱운동선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다른 연구들에서도, 조깅(유산소)과 근력운동(무산소)을 함께 하면 둘 중 하나만 할 때보다 건강 지표가 전반적으로 향상된다는 결과가 있었다.
남성에게 수명 단축을 시키는 경향이 있는 종목은?
반면, 여기서 반전이 있다. 무조건 ‘운동선수 = 장수’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었다. 복싱이나 무도(유도·태권도 등), 배구, 스모 등은 오히려 통계적으로 수명을 단축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특히, 일본의 전통 스포츠인 스모 선수들은 일반인보다 약 10년가량 수명이 짧게 나타났다는 결과가 나왔다.
스모 선수들은 현역 때 체중을 엄청나게 늘리고, 은퇴 후 관리가 잘 안 되면 건강 문제가 심각해질 우려가 크다. 거기에다 복싱이나 무도 선수들은 경기 중에 뇌진탕 같은 부상을 입을 위험이 높아, 수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대체로 선수들은 “오래 살자”라기보다 “이기자”를 목적으로 훈련을 한다. 그러다 보니 단기적으로는 경기력이 최고이지만, 은퇴 후 긴 인생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될 수 있다.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도, 건강을 위협하는 스포츠를 시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종목의 경우, 은퇴 후에 안정적으로 건강을 돌보고 사회에 잘 안착할 수 있는 제도나 지원이 꼭 필요해 보인다.
여성 운동선수는 왜 수명에 긍정 효과가 적게 나타났나
남성처럼 많은 표본을 확보하지 못해 세부 분석이 충분치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남성보다 수명 연장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영·스키·단거리 달리기·육상 혼합 종목·농구 등 꽤 많은 종목에서 부정적 연관성이 보였다. 왜 그럴까?
연구진은 몇 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1. 여성은 원래부터 남성보다 평균수명이 길기 때문에, ‘추가로 더 늘릴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2. 톱운동선수 수준의 격렬한 운동이 여성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고, 적절한 운동량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사실 다른 연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여성 운동선수들이 평생 동안 겪는 신체 변화와 경기 강도가, 과연 건강에 어떤 장단점을 가져오는지, 우리는 아직 명확히 모르고 있다. 더욱 활발한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어떤 스포츠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느냐”
이번 연구가 던지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톱아스리트=건강수명 무제한”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종목에 따라, 성별에 따라 큰 편차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성인의 입장에서든, 부모의 입장에서든, “운동선수로서의 삶”이 실제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게 만든다.
잘만 하면 분명 큰 이점을 누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혹사하여 은퇴 후 오랫동안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
이번 통계가 모든 것을 단언해주지는 않는다. 여성 운동선수는 표본이 적어 제대로 된 결론을 내기 어려웠고, 개개인의 생활 습관이나 부상 이력 등 세부 요소도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톱운동선수라면 다 오래 살겠지”라는 막연한 환상을 깨준 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로, 더 많은 연구진들이 지금도 선수들의 생애 전반을 추적 조사하고 있다. 톱운동선수의 현역 시절뿐 아니라 은퇴 후까지 들여다보며, 운동 강도가 정신·신체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여성 선수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장기 추적 연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인생은 길고, 은퇴 후의 삶은 더 길다. 현재의 영광을 위해 몸을 혹사하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지만, 그 뒤 찾아올 세월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운동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번 연구가 하나의 작은 화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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