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물을 많이 마셔야 건강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 왔다. 갈증을 느낄 때만 물을 마셔도 충분하다는 사람도 있고, 하루에 몇 리터씩 꼬박꼬박 챙겨 마시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작 “적정량이 어느 정도인지”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2024년 11월 25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의 연구진이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
흔히들 “물을 많이 마셔라”라고만 단순히 권장해왔는데, 사람마다 상황이 워낙 달라서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구를 이끈 비뇨기과 과장 벤자민 브레이어(Benjamin Breyer) 박사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신장결석이나 요로감염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충분한 수분 섭취가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반대로 소변 횟수가 잦아 생활에 불편을 겪는 이들에겐 물 섭취를 조금 줄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UCSF 연구팀은 과거에 진행된 18편의 무작위대조시험(RCT) 결과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물 섭취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지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그중 몇 가지 눈에 띄는 결론이 있다.
우선, 신장결석 위험을 낮추는 데에는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이미 신장결석을 겪은 사람이 물을 더 자주, 더 많이 마시면 재발률이 절반 이상 줄어든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다. 물을 많이 마시면 소변이 묽어지고, 그만큼 결석이 생길 확률이 줄어드는 원리다.
또 요로감염증(일명 UTI) 같은 질환에도 도움을 주는 듯했다. 평소보다 물을 많이 마신 여성들 중에는 요로감염증 발병 빈도가 줄고 항생제 사용도 감소했다고 한다. 다만, 소변 속 세균 수 자체가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는가에 대해서는 결과가 제각각이라 확답하기 어렵다고 한다.
반면, 체중 감량 효과나 편두통 감소 효과는 아직 연구마다 엇갈린다. 어떤 연구에서는 식사 전에 물을 1.5리터 정도 마신 비만 성인들이 더 성공적으로 체중을 줄였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다른 연구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도 한다. 머리가 지끈거릴 때 물을 마시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통계적으로 “이건 확실하다”라고 말하기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혈당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2형 당뇨병 환자가 식사 전에 물을 충분히 마시면 공복 혈당이 뚝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는가 하면, 물 섭취량을 늘린 다른 그룹에서는 오히려 혈당이 조금 올랐다는 연구도 있었다. 식사량이나 체중 변화 같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물 많이 마시면 당 조절에 좋다”라고 말하기는 이르다는 뜻이다.
결국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개개인의 상황이라는 결론으로 귀결
신장결석이나 요로감염증 병력이 있는 이라면, 하루 수분 섭취량을 신경 써서 늘리는 게 여러모로 이득일 수 있다. 반면, 빈뇨(소변을 너무 자주 보는 증상)로 일상생활이 힘들거나, 특정 질환으로 인해 수분 제한이 필요한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미국 국립의학아카데미가 19~30세 남성 하루 3리터, 여성 2.1리터의 수분 섭취를 권장하고 있지만, 여기에 포함되는 건 음식 속 수분도 고려해야 하며, 또 활동량에 따라 적정량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종종 “물을 하루 4리터 이상 마시면 살이 쭉 빠지더라” 같은 체험담이나, “피부가 좋아지고 변비가 싹 사라졌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물론 그런 경험은 그 사람에게 잘 맞았을 수 있다.
하지만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던 누군가는 지나치게 물을 많이 마시다가 속이 더부룩해지는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 모든 건강 팁이 그렇듯, “좋은 사람에겐 좋은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종종 잊는다.
한 예로, 몇 해 전 친구가 “물을 많이 마시면 자동으로 배가 부르고, 자연스레 살이 빠질 거야”라며 무리하게 물을 들이켰는데, 결국 잦은 소변과 복부 팽만감을 호소하다가 그만 포기했던 일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라고만 생각했는데, UCSF 연구를 보고 나니 아예 개인 체질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았던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은 생명”이라는 말이 있듯, 수분은 우리 몸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하지만 이 UCSF 연구가 알려주듯, 그걸 온종일 마시기만 하면 마치 만병이 사라질 듯 과장하기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마다 놓인 환경이나 건강 이슈가 다르니까 말이다. 요즘같이 다양성을 중시하는 시대에는 물 섭취에 대해서도 “너는 하루에 몇 잔, 나는 몇 잔”식 맞춤형 접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논문이 실린 학술지는 "JAMA Network Open"이다. 연구진은 앞으로도 더 많은 임상시험 결과를 종합해서, 물 섭취와 각종 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심층적으로 파헤칠 계획이라고 한다. 혹시라도 물을 갑자기 엄청나게 많이 마시거나, 아예 안 마시고 버티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건강을 관리하려 든다면, 한 번쯤은 의사에게 상담해보길 권하고 싶다. 결국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지만, ‘얼마나’ 많이 마셔야 하는지는 개인마다 제각각이라는 점이 이 연구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는 하루 2리터가 딱 적당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2리터가 지나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나만의 적정량을 찾는 일, 그리고 그 균형점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진짜 건강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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