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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피부로 만든 책? 전시 찬반 논란

by 아이디어박람회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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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동부 서퍽주의 한 박물관에서, 19세기에 벌어진 악명 높은 살인사건의 범죄자인 '윌리엄 코더'(William Corder)의 사람 피부로 만든 책 두 번째 권이 약 200년 만에 다시 발견돼 전시된다. '윌리엄 코더'는 1828년 교수형을 당한 뒤 시신의 피부가 벗겨져 재판 기록을 엮은 책 표지로 사용됐다.

 

사람 피부로 만든 책? 전시 찬반 논란

 

1933년부터 서퍽주 베리 세인트에드먼즈(Bury St Edmunds)의 모이스 홀 박물관(Moyse’s Hall Museum) 에서는 그 인피 제본본 한 권을 전시해 왔지만, 사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책이 한 권 더 존재했던 것이다. 최근 박물관 사무실 서가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이 ‘두 번째 인피 제본본’이 발굴돼 윤리적 논란 속에 다시 관람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1827년 붉은 헛간 살인사건

 

사건이 있었던 빨간 헛간. 정문 왼쪽에 있는 빨간 기와지붕 때문에 '빨간 헛간'이라고 불렸다. 나머지 지붕은 초가지붕이었다.
사건이 있었던 붉은 헛간. 정문 왼쪽에 있는 붉은 기와지붕 때문에 '붉은 헛간'이라고 불렸다. 나머지 지붕은 초가지붕이었다.

 

 

1827년 잉글랜드 동부 서퍽주 폴스티드(Polstead)에서 발생한 붉은 헛간 살인사건(Red Barn Murder)은 조지 왕조 말기 영국 사회를 경악시켰다. 당시 23세였던 윌리엄 코더는 25세의 마리아 마턴(Maria Marten)과 불륜 관계였다.

 

윌리엄 코더는 마리아에게 마을에서 ‘붉은 헛간’으로 알려진 장소에서 만나 함께 이프스위치로 도망가 결혼하자고 속삭였지만, 실제로는 헛간에서 그녀를 총으로 쏘아 살해하고 시신을 마룻바닥 밑에 묻었다. 사건은 곧바로 드러나지 않았고, 윌리엄 코더는 런던으로 달아나 다른 여성과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마리아의 어머니가 “헛간을 파보라”는 계시 같은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헛간이 파헤쳐졌고, 시신이 발견됐다. 윌리엄 코더는 런던에서 체포돼 1828년 8월 11일 공개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당시 법에 따라 시신은 의학 해부용으로 넘겨졌다.

 


범인의 피부로 만든 책

 

에든버러의 외과 의사 홀 박물관에 전시된 살인범 윌리엄 버크의 가죽으로 제본된 책
에든버러의 외과 의사 홀 박물관에 첫 번째로 전시되어 있는 살인범 윌리엄 버크의 가죽으로 제본된 책

 

 

윌리엄 코더의 시신은 의사들에 의해 해부됐고, 피부 일부가 재판 기록을 담은 책의 표지로 사용됐다. 이 인피 제본본은 1933년부터 모이스 홀 박물관에서 전시돼 왔다.

 

인간 피부를 제본에 쓰는 행위는 16세기부터 유럽에서 나타났다. 당시에는 사형만으로 죄를 갚기에 부족하다는 분위기가 있었고, 사후 시신에 가해지는 ‘육체적 형벌’까지 형벌의 연장으로 여겨졌다. 19세기에는 사형수의 기록이나 의학 서적, 의사가 환자 피부를 개인 기념품으로 제본하는 사례도 있었다.

 

잊혀진 두 번째 인피 제본본의 재발견

 

재발견된 코더 사형수의 인조가죽 제본본. 홀 박물관의 두 번째 인조가죽 제본본이다.
재발견된 사형수 윌리엄 코더의 인조가죽 제본본. 홀 박물관의 두 번째 인조가죽 제본본

 

 

2025년, 박물관 직원이 자료 목록을 점검하다가 과거에 두 번째 인피 제본본 이 기증됐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그 책은 박물관 사무실의 책장 한켠에 다른 자료와 함께 조용히 꽂혀 있었다. 이 책은 윌리엄 코더의 시신을 해부한 의사와 연관된 가문이 수십 년 전 박물관에 기탁한 것으로 확인됐다.

 

직원 댄 클라크(Dan Clark)는 “20세기 수장품 가운데 가끔 소재가 불분명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다시 찾은 것은 행운”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책은 표지 전체가 아닌 모서리와 책등 일부에만 인간 피부가 쓰였지만, 그 이력만으로도 큰 화제가 됐다.

 

전시를 둘러싼 찬반·윤리 논쟁

 

박물관은 역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고 강조하지만,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역사작가 테리 디어리(Terry Deary)는 “이런 것은 태워 없애야 한다”며 “인간 유해를 전시물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코더가 정황증거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 사후 시신이 비인도적으로 다뤄진 점을 지적하며 “처형보다 더 끔찍한 것은 죽은 뒤 시신이 해부돼 이런 용도로 쓰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현재 모이스 홀 박물관은 두 권의 인피 제본본을 나란히 전시 중이다. 유물 담당자 댄 클라크는 “역사의 불편한 면도 직시해야 한다”며, 전시 목적이 선정성에 있지 않고 당대의 폭력적·전시적인 정의관을 되짚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직원 애비 스미스(Abbie Smith)는 “만져보면 일반 가죽 제본과 다르지 않아, 인간 피부라는 사실을 모르면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며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는 특별한 자료”라고 밝혔다.

 

인피 제본본’ 전시는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크다. 2024년 3월 미국 하버드대 호튼 도서관은 19세기 프랑스 책 《영혼의 운명》에서 사람 피부로 된 표지를 제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해당 책은 프랑스 의사 뤼도비크 불랑(Ludovic Bouland)이 병원에서 사망한 여성의 피부를 본인 동의 없이 떼어 제본한 것이었다.

 

10여 년간 윤리적 재검토를 촉구해 온 서지학자 폴 니덤(Paul Needham) 등의 노력 끝에, 대학은 인체 존엄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바꿨다. 하버드대는 제거한 피부를 ‘적절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방안을 관계 기관과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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