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저 별까지 단숨에 날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상상한 적이 있는가. 영화 속에서, 특히 "스타워즈" 같은 작품에서는 한 솔로와 츄바카가 모는 “밀레니엄 팔콘”이 하이퍼드라이브를 가동하여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은하를 누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의 물리학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금껏 인류가 쌓아온 최신 과학기술로도, 단 한 번도 빛의 속도에 도달한 적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더 가깝다.
왜 빛의 속도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05년,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내놓은 ‘특수상대성이론’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을 하면 할수록 그 질량은 점점 증가한다. 결국 광속에 근접할 즈음에는 질량이 사실상 무한대가 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도 무한대가 된다.
무한한 에너지는 현실적으로 구할 수 없으니, 어떤 물질도 광속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인간은 대형 하드론 충돌기(LHC) 같은 장비를 이용해 아원자 입자를 광속의 99.99999896%까지 밀어붙여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완전한 광속은 아니며, 단지 ‘극도로 가까운 속도’일 뿐이다. 결국 광속으로 움직이는 것은 ‘질량이 0’인 존재, 즉 빛의 입자인 광자(포톤) 정도나 가능한 특별한 상황이다. 광자는 질량이 없기에 별도의 가속 에너지도 필요 없고, 그렇기에 오직 광속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 멈추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광자야말로 “자유가 없는 질주”를 하는 셈이다.
여기까지 들으면, “결국 인간은 절대 광속 이동을 못 하는구나”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딱 잘라 말하면 재미가 없다. 우리는 지금 현실의 물리법칙을 잠시 무시할 수 있는 ‘마법의 상상력’을 동원해보려 한다.
말하자면, 인체에 어떤 가혹한 가속도에도 끄떡없는 마법의 보호막을 두르고, 한계 없는 추진력을 통해 인간을 점점 광속으로 다가가게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우선 상상 속에서라도 광속에 접근하려면 문제에 봉착한다. 현실에서 전투기 조종사들이 경험하는 약 9G(지구중력의 9배)에 이르기만 해도 혈액이 온몸에 고루 공급되지 않아 실신 직전까지 몰린다고 한다. 하물며 광속에 근접하는 가속도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가속에도 끄떡없는’ 마법의 막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 막 덕분에 사람은 납작해지거나 기절하지 않고 서서히, 혹은 단숨에 광속에 근접하게 된다. 이제 광속 근처를 날아다니는 순간, 놀라운 현상이 벌어진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어떤 관찰자에게든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 즉, 멈춰 서 있는 사람도, 광속의 70%로 달리는 사람도 모두 빛의 속도를 초속 약 29만9,792km로 본다. 평소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시속 60km로 달리는 차 옆을 시속 40km로 달리는 차가 지날 때 우리는 상대 차를 시속 20km 정도로 느리게 추월하는 것으로 체감한다. 하지만 빛에 대해서는 그런 상대속도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광속 60%로 가는 사람에게도 빛은 여전히 ‘광속’이다. 여유롭게 앞서나가는 빛의 속도를 여전히 그대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런 불가사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전제를 뒤집었다.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일 것이라는 믿음을 걷어내고, 오히려 시공간이 유연하게 휘어진다고 설명한 것이다.
빛의 속도가 항상 동일하게 보이려면,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광속에 가까이 갈수록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거리 역시 압축되어 보인다. 이를테면, 지구에서 보는 ‘1시간’이 광속 근처를 누비는 사람에게는 ‘1분’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실제로 광속에 가깝게 이동하는 여행자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아광속(광속에 가까운 속도)으로 화성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실험을 떠올려보면, 지구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약 16분 40초가 흐르는 동안, 여행자 본인은 약 8분 20초 정도만 체감한다.
거리나 시간의 수치 자체는 가상의 상황이지만, 중요한 건 ‘시간 지연(Time Dilation)’이라 불리는 이 상대적 시간 흐름의 차이가 실제 물리 이론에서 예측된다는 점이다. 더 극단적으로, 약 4.3광년 떨어진 별까지 왕복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광속의 99.99%로 왕복한다면, 지구 시간으로는 약 8년 8개월이 흐를 때, 여행자에게는 단지 1개월 반 정도로 느껴진다. 다시 지구로 돌아왔을 때, 여행자는 고작 한 달 남짓 떠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구의 가족과 친구들은 8년이라는 긴 세월을 겪은 뒤일 것이다.
이는 얼마나 극적인 시간 왜곡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또 다른 흥미로운 변화는 ‘빛의 색’이다. 아광속으로 전진할 때, 앞으로 다가오는 빛의 파장은 짧아져 파란빛 쪽으로 치우치고(청색 편이), 뒤쪽으로 멀어지는 빛은 파장이 길어져 붉게 변한다(적색 편이). 이는 마치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다가올 때 높은 음으로, 멀어질 때 낮은 음으로 변하는 ‘도플러 효과’의 빛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아광속으로 우주를 비행한다면 정면에는 푸르스름한 광경이, 뒤를 돌아보면 붉은빛으로 물든 풍경이 펼쳐지는 진기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마지막 상상을 해보자.
질량마저 0으로 만들어 인간을 실제로 ‘광속’에 올려놓는다면 어떨까?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광속에 도달한 관찰자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멈추고, 앞뒤로 빛의 파장은 무한대 혹은 0에 수렴하여 아예 관측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결국 빛을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어쩌면 광속 세계는 영원한 암흑, 혹은 완전한 정적만 존재하는 극도의 부자유한 상태일지 모른다.
순간과 영원의 경계가 무너진 세계, 공간과 시간의 의미가 사라진 세계, 그것이 진정한 광속의 세계일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어디까지나 공상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실재하는 우주에서 질량을 가진 인간이 광속으로 이동할 수 없다는 점은 변함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이토록 풍부한 변화를 경험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질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질량이 있기에 멈출 수 있고, 가속을 조절할 수 있으며, 시공간의 왜곡 없이 주변 세계를 관찰하고 살아갈 수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일상의 편안함, 느리게 흐르는 시간, 의지대로 바라볼 수 있는 광경을 누리는 것이다. 결국 광속을 향한 궁극의 질주는 우리 눈앞에서 실현될 일은 없을지 모르나, 그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의 법칙이 얼마나 기묘하면서도 정교하게 짜여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우리가 지금 겪는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는, 또 다른 의미의 ‘은하계급’ 교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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