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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300년 동안 잔혹한 마녀사냥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by 아이디어박람회 2024.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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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18세기 말까지 약 300여 년간 약 9만 명이 마녀로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그 절반은 화형이나 절벽에서 추락시키는 등 잔혹한 방식으로 처형당했다. 이러한 광란적인 박해가 왜 그렇게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었을까? 그 원인이 1450년 인쇄기의 발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 인쇄기로 출판된 마녀 특정 지침서인 악미학 서적이 유행

 

1487년 도미니코회 수도사 하인리히 크레이머가 저술한 "마녀 잡는 망치"(Malleus Maleficarum)는 악마학의 표준서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은 마녀를 신학적으로 해석할 뿐만 아니라, 마녀를 식별하고 기소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하여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쇄기의 발명으로 인해 이 책은 대량으로 출판될 수 있었고, 유럽 전역에 걸쳐 마녀사냥이 급격히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 책 출판 후 마녀사냥 가속화

 

영국 버밍엄 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은 1400년부터 1679년 사이 중앙유럽의 553개 도시에서 진행된 마녀 재판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마녀 잡는 망치"가 재판매될 때마다 마녀 고발이 현저히 증가하는 패턴을 발견했다.

 

 

 

특히, 이 책이 출판된 지역과 가까운 도시일수록 마녀 재판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는 인쇄기가 정보 확산의 핵심 매개체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하인리히 크레이머는 이 책을 통해 마법을 단순한 민간의 장난이나 이교도의 행위로 보지 않고, 사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음모로 규정했다. 교황과 황제의 승인을 받은 이 가이드북은 당국에 마녀 박해를 위한 법적 제약을 철폐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며, 그 결과 통치자들은 "마녀사냥을 감독하는 심문관"을 공식적으로 임명할 수 있었다. 이는 마녀사냥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었다.

 

 

미국 산타페 연구소의 케리스 도텐 스니커 박사는 "각 도시는 단독으로 마녀사냥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인근 도시들의 사례를 관찰하고 배워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마녀 잡는 망치"에서 제시된 사고방식과 인근 도시의 재판 사례가 결합되면서, 잔혹한 박해가 체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마녀사냥이 미신이나 종교적 열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쇄기를 통한 정보의 체계적 확산과 사회적 네트워크의 영향 아래에서 일어난 조직적인 현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환경적 재난이나 종교 분쟁 등 다른 요인들이 마녀사냥 열기의 상승에 기여했을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이러한 요인들과 마녀 재판 간의 강한 상관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마녀 잡는 망치"의 출판과 재판매 시기가 마녀 고발의 급증과 일치하는 점에서 이 책의 영향력이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책이 재판매될 때마다 해당 지역의 마녀 재판이 크게 증가한 점은 인쇄기가 사회적 공포와 편견을 확산시키는 매개체였음을 뒷받침한다.

 

| 시대는 책에서 SNS로, 정보 확산으로 사회 전체의 행동이 변화하다

 

도텐 스니커 박사는 "과거의 마녀사냥 도입 과정은 현대 정부의 정책 도입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오늘날에는 SNS를 통해 새로운 사상이 빠르게 퍼지며, 사회 전체의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면 지금은 그것이 SNS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사상이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 뿌리내리고 사회 전체의 행동이 변하게 된다. 마녀사냥 당시의 통치자나 일반 사람들 중에는 약간 이상한 사람이나 의견이 맞지 않는 라이벌,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상대 등을 제거하기 위해 마녀사냥을 구실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같은 일이 현대에도 발생할 수 있다. 명백히 잘못되고 미친 짓이라 할지라도, 냉정을 잃은 집단의 광란을 억제할 수 없는 마녀사냥의 사례를 생각하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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