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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EOLOGY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는 누구였을까?

by 아이디어박람회 202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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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를 통치하는 것은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기원전 15세기, 하트셉수트(Hatshepsut)라는 이름의 여성이 이 전통을 깨고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했다. 그녀는 21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녀의 죽음 이후 역사는 철저히 그녀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하트셉수트, 통치와 흔적을 지우려던 시도와 다시 드러난 업적

 

하트셉수트는 3,500년 동안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사실 클레오파트라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통치 기간 동안, 이 여성 파라오는 다수의 웅장한 기념비를 세웠다. 그중에서도 왕가의 계곡 근처에 있는 데이르 엘바하리(Deir el-Bahri) 장례 복합 단지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그녀의 위대한 건축적 유산 중 하나다. 또한, 그녀는 평화와 번영을 이끈 지도자로도 기록된다.

 

하지만 하트셉수트의 권력 장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통치 정당성은 불확실한 기반 위에 서 있었다. 투트모세 1세(Thutmose I)와 아흐모세(Ahmose)의 딸로 태어난 하트셉수트는 이복 형제인 투트모세 2세(Thutmose II)와 결혼해 여왕이 되었다. 그러나 투트모세 2세가 기원전 1479년에 사망하자, 하트셉수트는 그의 어린 아들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를 대신해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투트모세 3세는 나이가 어려 직접 통치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은 하트셉수트가 투트모세 3세가 성인이 되면 권력을 넘겨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녀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파라오로 선언하고 기원전 1458년 사망할 때까지 왕좌를 굳건히 지켰다. 그녀는 자신이 남성 파라오와 같은 권위를 지녔음을 강조하기 위해 수염을 달고 남성처럼 묘사된 조각상과 벽화를 만들도록 했다. 이는 자신의 통치에 대한 도전을 막고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이었다. 하셉수트의 통치 기간 동안, 그녀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주목받았다.

 

그녀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푼트(Punt)로의 원정이었다. 이 원정에서 그녀는 금, 상아, 다양한 이국적인 동물 등을 이집트로 들여오며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다. 이러한 성공적인 원정은 그녀의 권위를 한층 더 높여주었다. 하지만 하셉수트가 사망한 후, 투트모세 3세는 그녀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는 하트셉수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모든 기념비를 파괴하고 그녀의 이름을 지웠다. 이는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던 왕위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하트셉수트의 업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1822년, 고고학자들은 데이르 엘바하리에서 상형문자를 해독하며 하트셉수트의 이름을 재발견했다.

 

이를 통해 투트모세 3세의 시도를 무색하게 만들며,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의 이야기를 복원할 수 있었다. 1903년에는 유명한 이집트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왕가의 계곡에서 하트셉수트의 비어 있는 관을 발견했으며, 그녀의 미라화된 시신은 그 근처의 작은 무덤에서 또 다른 한 세기 후에야 발견되었다. 오늘날에도 고고학자들은 하트셉수트의 이름이 적힌 파괴된 기념비들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다. 이러한 발견들은 투트모세 3세의 시도가 결과적으로 하트셉수트의 유산을 더 부각시키는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대담한 권력 장악과 통치는 이제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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