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면 자연스럽게 손이 눈밭으로 향한다. 차가운 눈을 한 움큼 쥐어 동그랗게 뭉치고, 또 하나를 쌓아 올리며 누군가는 웃음 가득한 눈사람을 완성한다. 하지만 이런 익숙한 겨울 풍경 속 눈사람, 과연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최초의 눈사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눈사람의 오래된 이야기
눈사람이 처음 만들어진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 다만, 문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7세기 중국과 14세기 중세 유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에서 유일한 눈사람 연구가인 밥 에크스타인(Bob Eckstein)은 2000년대 초, 세계 곳곳의 고서와 기록을 뒤지며 눈사람의 기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가 발견한 것은 14세기 후반,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시도서(Book of Hours)'였다.
기독교 신자들이 기도를 위해 사용하던 이 필사본의 삽화에는 팔과 다리가 녹아내린 눈사람이 불에 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인간의 허무함을 담아낸 듯한 이 장면은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더 오래된 기록도 있다. 7세기 중국 도교 문헌 봉도과계(奉道科戒)에는 상아와 나무를 조각해 만든 상들과 함께 ‘눈을 쌓아 만든 상’이 언급되어 있다. 고대인들도 눈이라는 쉽게 사라지는 재료를 활용해 형태를 만들고, 이야기를 담아냈던 것이다. 어쩌면 눈사람의 기원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 구석기 시대 인류가 눈을 뭉쳐 무언가를 본뜰 때, 그 순간이 눈사람의 탄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눈사람의 모습
눈사람은 언제나 녹아 사라지기 마련이라, 그 모습을 그대로 남기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남아 있는 몇 가지 기록들은 눈사람이 문화와 감정을 담아온 존재임을 보여준다. 151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혹독한 추위와 전염병으로 힘든 시기를 겪던 시민들이 100개 이상의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눈사람들은 단순히 귀엽거나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눈사람은 정치적 풍자, 또 어떤 것은 당대의 불만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차가운 눈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안을 표현하고, 소리 없이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눈사람 사진
눈사람은 시간과 함께 녹아 사라지지만, 19세기에 들어서 사진 기술이 발전하면서 눈사람은 처음으로 영원히 기록될 수 있었다. 가장 오래된 눈사람 사진은 1853년경, 웨일스의 여성 사진작가 메리 딜윈(Mary Dillwyn)이 촬영한 작품이다.
그녀의 사진 속 눈사람은 단순한 겨울 장식이 아닌, 과거의 한 순간을 조용히 간직하고 있다. 이후에도 다양한 눈사람들이 사진에 남았다.
1906년 러시아의 전통 의상을 입은 눈사람, 아제르바이잔의 거대한 눈사람 '빙하의 아버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경찰이 수갑을 채운 눈사람, 눈으로 만든 빅토리아 여왕 등, 눈사람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메시지를 담아왔다.
20세기의 눈사람, 대중문화 속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눈사람은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에 자리 잡았다. 초기의 단순한 중성적 형태에서 벗어나,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반영한 캐릭터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카드, 장식품, 포스터 등에서 눈사람은 따뜻함과 친근함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눈사람이 항상 따뜻하고 밝은 의미만 담은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사회적 불만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풍자와 저항의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오늘날, AI가 만들어낸 눈사람
21세기에 들어 눈사람의 모습은 또 한 번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AI 기술을 통해 디지털 아트로도 표현되고 있다. 최근 디지털 크리에이터 doopiidoo는 AI를 활용해 컬트적이고 독특한 분위기의 눈사람을 제작했다.
눈사람은 사라지는 존재다. 그러나 그 순간의 아름다움, 인간의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개체로서 눈사람은 계속 만들어지고, 또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손끝에 남은 차가운 감촉, 하얀 눈의 투명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겨울을 특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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